[천자 칼럼] '사라진 질병' 두창의 부활

입력 2022-05-23 17:12   수정 2022-05-24 00:15

“천연두로부터 자유를 얻었다는 사실을 엄숙하게 선포한다. 세계 모두가 힘을 모아 인류 진보를 향한 또 다른 초석을 쌓았다.”

세계보건기구(WHO)가 1980년 5월 8일 내놓은 ‘천연두 박멸 선언문’의 일부다. 인류가 전염병과 싸워 이긴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천연두는 인류가 완전 정복에 성공한 최초의 전염병으로 기록됐다.

그전까지 천연두는 인류 최초의 전염병이자 최악의 전염병으로 꼽혔다. 기원전 1157년에 사망한 람세스 5세 파라오의 미라 피부에서도 천연두 발진 흔적이 발견됐다. 러시아의 표트르 2세, 프랑스의 루이 15세 등 18세기 유럽 군주 가운데 다섯 명이 천연두로 사망할 정도였다. 20세기에만 3억 명 이상이 천연두로 죽었다.

우리나라에서 천연두는 두창(痘瘡)으로 불렸다. ‘마마’로도 통하던 두창은 콩알(豆)과 같은 피부 질병(瘡)이 일어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허준이 치료법을 모은 《언해두창집요》를 쓸 만큼 두창은 조선 전 시기에 걸쳐 유행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천연두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인류가 천연두에 맞선 것은 불과 200여 년 전부터다. 영국 의학자 에드워드 제너가 우연히 우두를 앓은 소젖 짜는 여인들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1796년 5월 14일 여덟 살 소년의 팔에 우두 고름을 주입하는 우두법 실험을 최초로 실시했다. 인류 역사에 백신이 처음 등장한 날이다. 예방주사를 뜻하는 백신(vaccine)이라는 단어도 암소를 의미하는 라틴어 바카(vacca)에서 유래했다. 천연두는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31개국에서 풍토병으로 남아 있었으나 대규모 예방접종 덕택에 1980년 종식 판정을 받았다.

천연두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주로 아프리카에서 발생하던 희소 감염병 ‘원숭이 두창(monkey pox)’ 환자가 유럽과 북미, 중동 등으로 확산하면서다. 이 바이러스는 1958년 덴마크의 한 실험실 원숭이에게서 처음 발견됐다. 천연두와 비슷한 증상이 원숭이에서 발견돼 이런 이름이 붙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엔데믹(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으로 향해가는 가운데 인류가 40여 년 전 사망 선고한 천연두가 ‘넥스트 팬데믹’ 후보로 등장했다.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정복은 인류의 영원한 숙제다.

유병연 논설위원 yoob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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